The Class of '92
일과 육아로 한동안 뜸했다가 오랜만에 애 잘 때 한 종목 잡아봤다. 올 8월에 입수한건데 시간이 벌써 연말이 됐다. 일기를 보아하니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주간...
그러든지 말든지 별다른 감흥이나 동요도 없는 걸 보면, 이젠 레고가 취미의 영역을 넘어 야, 비도 내리는 데 오랜만에 곱창이나 뜯으러 가자같은 수준으로다 일상의 자연스러움이 된거다.
6086 비룡성은 올해로 딱 발매 30주년을 맞이한 고전이다. 꼭 성시리즈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알만한 양반들은 모두 다 아는 유명한 제품.
이미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기도하고 지루한 조립과정 등은 구질구질 질색이니까 생략한다. 그냥 유툽 한 번 보면 끝나는 시대 아닌가. 대신 간단한 독후감이나 끄적여본다.
#1. 전반적인 짜임새는 기본기에 대체로 충실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설계가 솔찬허시 있다. 선대의 레고랜드 제품군에 비해 통짜부품의 사용 빈도가 확연히 많아졌고, 이는 당연히 정통 손맛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
#2. 성의 구조는 크게 성문, 타워(x2), 본관 이렇게 네 파트로 나뉜다. 특수 베이스 판을 기초로 설계된 비대칭 성곽은 네모반듯한 전작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부분. 이러한 입체적 구도와 역동감은 비룡성이 고전 성시리즈를 통틀어 단연 No.1 이다.
#3. 이정도 급수의 성채를 경첩 기믹 없이 32x32 스터드 안에서 구현한 덕분인지 레고랜드류 특유의 덜어내기와 과장의 묘사가 유달리 극적이다. 이런건 요즘 나오는 초정밀 대형제품처럼 따지듯이 톺아보면 안되고, 한 3~4 메다 정도 먼발치에서 실눈뜨고 윤곽선을 따라 숲 전체를 감상해야지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레고랜드 시대의 레고는 고유의 감상 포인트가 분명 존재한다.
#4. 피겨들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구성은 전작들을 한참 압도한다. 단, 이 부속품들은 비룡성 익스클루시브들이라 콜렉터 입장에선 세심한 관리가 요망된다. (= 매매가격을 결정한다) 애들이 생각없이 막 가지고 노는 용도라면 부러지든 잃어버리든 뭐가 되기 딱 좋게 생겨 먹었다.
#5. 본관의 노란색 격자 창문 쪽 뷰가 특히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무채색과 어우러진 vivid한 색상 조합이 압권이다. 왠지 롯데월드엘 가고 싶어진다.
#6. 성채 정면을 기준으로 좌측과 후면은 상당히 횡하다. 디스플레이적인 측면에서 얼짱 앵글이 오른쪽 45도 가 가장 확률이 높아 백호야 로 딱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맨들다 말고 화장실을 가버린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내 생각엔 역시 이런 것쯤이야 다 의도됐다고 볼 수 밖에 없는게, 일부러 공간을 열어둬서 조작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던 것이라고 본다. 이는 3번 항목의 맥락과도 어느 정도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 손을 성 안쪽으로 넣어서 이리저리 조작을 하다보면 이게 어떤 느낌인지 대번에 감이 온다. 애고 어른이고 간에 단순히 손 크기 문제는 아니다.
#7.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와이프는 공주 피겨는 없냐고 묻는다. 제대로 고기맛을 아는 것 같다.
총평 : 2% 부족한 듯 아닌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레고랜드 성시리즈의 풍미와 근본이 담긴 명작.
곧 다가올 막장 시대 직전의 화려한 라스트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