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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룡 성

점방아재 2022. 7. 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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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이름을 한글화하여 대박을 친 사례로는 슬램덩크가 예나 지금이나 업계 최강의 작품으로 꼽힌다. 레고도 마찬가지로 번역한 한글명이 본래의 영어 이름보다 더 강력하고 찐한 임팩트를 남긴 작품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6285 카리브해의 해적선(원제 : Black seas barracuda) 이나 6086 비룡성(원제 : Black Knight’s Castle) 등을 들 수 있다.

동화적 서사가 짙은 장르 특성상 의역의 묘를 살릴 수 있다 보니 아무래도 마을 시리즈보다는 이쪽 방면에 상당수 그런 제품들이 포진해 있다. 일례로 마을시리즈의 6541 국제수출항구(원제 : Intercoastal Seaport), 6396 국제공항(원제 : International Jetport) 같은 건 제목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번역해도 그 맛의 재미나 깊이가 뻔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6541 인천 앞바다 선창, 이렇게 짓기엔 너무 상스러운 느낌이...

한글화를 감칠맛나게 구현하려면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나 입에 착착 감기는 느낌 등을 잘 살려야 한다. 아예 나와바리를 흑해에서 카리브해로 바꾸기까지 한 6285 만 보더라도 당시 레고코리아가 작명에 꽤나 정성을 기울인 흔적을 알 수 있다. 내 생각엔 레고코리아가 세계지도를 볼 줄 모른다던가, 핀을 못잡았어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역 그대로 흑기사의 성보다는 방패 문양에 착안하여 飛龍城 이라는 가오 걸쭉한 이름이 붙은 6086 역시 탁월한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네이버에 비룡성이라 치면 짜장집 두 개가 나오고, 비룡각은 셀 수도 없다 (...)
같은 시리즈 내의 6085 또한 원제인 검은 군주의 성(Black Monarch's Castle) 보다야 黑龍城 이 더 짧고 굵은 이름인거고.

레고 마니아들은 특정 제품을 일컬을 때 대부분 제품번호로 통칭한다. 그러나 6086 같은 건 제품번호가 아니라 ‘비 룡 성’ 한 단어로 모든 것이 정리되고 함축된다. 어렸을 때 이걸 갖고 놀았든, 옆집 친구꺼 손가락만 빨았든, 지금 레고 매니아든 아니든 적어도 이 제품에 한 번이라도 기억이 있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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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력 약 20년 가량 동안 성 시리즈는 사실 나의 오래된 편식 취향 속에서 주류 분야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들어 본 것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인데 언제부터인가 비룡성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이 제품은 어렸을 때 친구네 몇몇 집엘 놀러가서 구경한 기억이 실제 있다.

 

골수 정통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선대의 작품들과 비교하여 통짜 부품의 함량이 높아지는 등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고는 하나, 레고랜드 레이블 시절의 고전 반열에서는 적어도 내 눈엔 비룡성이 가장 정점에 있는 성이 아닌가 한다. 375 노란성은 맥락 상 논외로 치자.

우주나 성 시리즈는 청진기만 댄다고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일단 직접 맨들어 보고 평가를 해야겠다.
이베이에서 요 며칠 매물 좀 찾다가 그냥 즉구가에 쇼부를 봐버렸다. 일단 관세 없이 송료포함 500유로...
가격은 이번 신작 사자성보다 더 나가지만 그래도 그거 살바엔 비룡성을 사두는 게 나에겐 훨씬 만족도가 좋다.

 

 

 

 


이걸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참한 매물이 또 하나 올라왔다. 상태가 상당히 좋아보인다. 3일 가량 남은 현재 280불 정도인데 과연 얼마에 마감될지 흥미진진하다. 이 정도 상태에 오픈 비딩이라면 물건값만 최소 600불각 잡아야지 싶은데 일단 조용히 구경이나 해야지.

 


이번 달은 골프화도 지르고, 에 또 라쿠텐에서 바리바리 지르고 해서 그 분이 한여름 말복 더위에 제대로 오신 느낌이다. 다음 달엔 휴가도 가야한다.

 

 

 

 



에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노빠꾸 강행돌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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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성시리즈 테마에는 세력간 대립을 주축으로 한 일종의 스토리 라인이 있다. 사자 문양의 크루세이더 계열과 블랙 팔콘 계열로 시작하여 이후의 블랙나이트 계, 로빈후드 계열까지... 이 바닥의 족보도 상당히 짜임새가 있고 재미있다. 왕년의 김분류 또 한 번 나서본다.

 

사실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건, 레고랜드 성시리즈는 전반적인 디자인이나 정서가 비현실적인 마법이 난무하고 막 그런 판타지적인 요소가 아니라 나름 진지하게 중세 시대의 고증에 입각해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게 또 족보를 정리하다보면 결국 중세 유럽의 역사와 지리, 건축까지 건드리게 되어있는 수순인 것이다. 원래 세계지리 공부도 지리부도로 하는 게 아니라 대항해시대로 하는 거잖아?


(...)
이건 못참지.

 

8/2) 덧붙임

결국 저 비룡성은 450파운드(약 570불선) 에 낙찰됐다. 운송료 100불 정도 포함해서 요즘 환율로 85만원 정도인데 상태 감안해도 내가 즉결 친 가격이 비교적 괜찮았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