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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soldiers never die

점방아재 2022. 6. 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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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레이블을 달고 나온 마지막 집짓기 모델은 1990년에 발매된 6592 Vacation hideaway 이다. 이것을 끝으로 마을시리즈 가옥 모델은 더이상 발매되지 않았다. 동시대 파라디사 시리즈에서 별장 모델 같은 게 소수 나오긴 했지만 그간의 전통적인 가옥 시리즈와는 동떨어진 콘셉이므로 패스...


1996년에 1854 VELUX Promotional house 가 출시됐다. 여러가지 면에서 레고랜드 시대의 마지막 데드캣 바운스였지만 아쉽게도 정규 라인업으로 생산된 모델이 아니라 덴마크의 창문 전문회사인 VELUX社의 판촉용으로 제작된 모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 무렵, 레고가 침체기에 빠졌을 즈음엔 이런 판촉용 제품조차도 아예 모습을 감춰버렸다.

바야흐로 레고말고도 놀고 즐길만한게 무진장 많아진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레고사 입장에선 지극히 평범한 집짓기 테마가 더이상 매력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좀 더 참신하고 흥미를 끌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던 것.

하지만 실상을 좀 들여다보면 좋게 말해 참신이고 흥미지, 결과적으로 당시 레고가 이런 기초 시스템을 저버리고 보인 행보는 싸구려 중국산 장난감과 다름이 없었다. 그 때 발매되었던 모델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십년 역사를 지닌 블럭 완구의 기본적인 정체성조차 어리둥절하던 시기였다. 변화된 시류에 맞추어 비디오게임 사업이나 헐리우드 영화와의 결합 등, 나름의 혁신을 꾀해보지만 본질을 외면한 채 당장의 유행만 좇는 건 그저 언발에 오줌누기였을 뿐이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혼란기를 겪으며 경영악화로 부도위기까지 몰린 레고사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2004년 켈 할아버지가 물러나고 새로운 CEO : Jorgen Vig Knudstorp 가 부임한 즈음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289801 ← 친절하게 기사도 나와있다.

본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와있지만 변화의 골자인즉, 과거처럼 조립식 장난감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는 한편 단순히 애들만이 아닌 성인 연령대까지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컨텐츠의 개발이었다. 이 무렵에 출시된 제품들 - 대표적으로 초기형 만번대, 크리에이터, 레전드 시리즈 등 - 을 retrospective 하게 살펴보면 이런 기조의 변화를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게임, 의류 같이 레고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고비용 저효율 비핵심 사업들도 과감하게 정리하며 리빌딩에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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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CEO 교체 이후 매년 떡상을 거듭하던 레고가 2022년 올해, 창립 90주년을 맞이했단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여 6080 사자성과 497 갤럭시 익스플로러가 팬 앙케이트를 거쳐 리바이벌 되었다는 소식을 얼마전 접하게 되었다.

청진기 살짝 대보니 6080은 리마스터라기보단 완전히 다른 모습의 신상이었고, 그나마 갤럭시 익스플로러가 원작의 느낌과 향수를 잘 재현해낸 것 같다. 볼수록 썩 괜찮게 나온 것 같아서 레고 공홈에서 한 점 질렀다. Jens 가 살아계셨더라면 마찬가지로 꽤나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뭐 레고사가 어련히 이것저것 따져봤겠냐만은 뭘로 보든 10305 쪽에 힘을 확실히 준 티가 난다.

 

 

 

 

4000피스 이상의 현미경 디테일과 드라마틱한 구도의 중세 성...

과거의 향수를 적당히 자극하면서 요즘 트렌드로 화려하게 재해석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제 유년시절 6080 을 가지고 놀았던 어른들을 비롯하여 많은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38년 세월을 거쳐 레고가 이렇게 진화했다라는 걸 하이엔드 포지션에서 보란 듯이 뽐내는 그런 느낌이다.

 

그럼에도 역시 내눈에는 숨막힐 정도로 여백이 없고 피곤하기만 하다.

지금의 레고는 장난감 특성 자체가 정밀한 실존 모사를 지향하는 프라모델류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일견 이게 당연한 모습이겠지만, 이왕에 패키징까지 레고랜드 시절의 노란박스를 따라하며 역사적 걸작을 기리는 취지였다면 전체적인 몸집과 분위기도 오리지날에 가깝게 회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 그렇게되면 또 허접스러운 추억팔이라고 잘 안팔릴려나.

 

신사임당 10장 이상 가격표가 붙었던데 나는 그 돈이면 필드 두 번 가고 남은 걸로 소고기 사묵든가, 아니면 비룡성으로 간다.....강행돌파한다.... 사실 10497 도 그런 측면에서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이쪽보다야 그나마 나은 편. 

 

내가 너무 시대착오적인 올드패션인가?

(...) 

 

그로발 시대에 국내외 유튜바들의 영상 리뷰가 우후죽순 유행을 하면서 인기몰이 바싹 땡길텐데 글쎄, 내 생각엔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 같다. 단순하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이 결국 오래오래 살아 남는다는 건 레고판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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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와이프랑 같이 톰아저씨의 영화를 보고 왔다. 코시국 이후 두번째 극장이다. 구닥다리 톰캣을 몰고 수동 기관총으로 최첨단 전투기를 때려잡는 노익장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CG 로 떡칠한 슈퍼히어로가 난무하는 와중에 여전히 고전적 리얼 악숀에 진심인 톰아저씨의 모습이 바로 오랜 세월 곰삭은 빈티지 레고와 일맥상통한다. 그러고보니 마침 6080-10305 도 탑건 1, 2 와 간극이 비슷하네.

아버지가 숀 코너리를 이야기 하셨던 것처럼 나도 아들에게 톰 아재의 화려했던 시절을 말 해주는 날이 언젠간 올텐데 그 즈음을 상상해 보자니 인생사 늙고 덧없음에 너무나 슬플 것 같다. 이미 왁구에 주름이 솔찬히 잡히셨다.

 

내일 월요일이구나. 더 슬프다.

오늘 선수들 치는 거 보니 다음 주 우정힐스 너무나 설레고 흥분된다. 애초에 잘 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고 가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넘사의 벽은 넘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