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8 studs

Bad money drives out good

점방아재 2022. 2. 1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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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고를 좀 맨지작 맨지작 하다보니까 과거의 자료도 찾을 겸해서 브릭인사이드(구, 레고인사이드)를 자주 들르게 되었다. 회원정보를 들춰보니 올해로 만 19년이 되었더라. 내가 로그인을 처음 했을 때 태어난 아이가 지금은 민증을 갖고 있다는 소리...
마지막으로 게시글을 올린 날짜는 공보의 말년차인 2014년 12월로 기록 돼있다. 그 때의 산타 레고 사진을 끝으로 브릭인사이드는 눈팅은 고사하고 즐겨찾기에서도 지워진 곳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곳은 대략 2010년대 초반까지가 실질적인 부흥기였다. 초기에는 통신체 금지 등 상당히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규모 공방 같은 느낌의 커뮤니티였다. 여러 가지 규약이나 까다로운 조건들이 다소 높은 진입 장벽처럼 느껴지긴 했으나, 거를 놈 걸러내고 있는 사람들 유대와 친목을 더 돈독히 해주는 순기능이 더 컸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 무렵, 소위 만번대 레고의 등장과 함께 레테크 붐까지 덩달아 불면서 키덜트 회원들이 급격히 유입된 걸로 기억한다. 북적북적한 분위기와 함께 데이터베이스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그랬지만... 퀄리티는 그에 반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뷰는 제품의 품평이라기보다 인스트럭션을 실사화한 지리멸렬한 사진 나열에 불과했고, 이게 그냥 유행처럼 굳어졌다. 누가 좋은 카메라 갖고 세세하게 조립과정 찍어서 포토샵 잘하나 그런 수준? 씨엔블루가 락밴드면 파리가 새여. 제품 박스도 아닌 택배 포장 박스같은 맹숭한 사진들이 갤러리를 하나 둘씩 수놓기 시작한 건 덤이었고, 그러면서 시나브로 내가 알던 올드비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원년 멤바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의 30대모임 게시판, 리뷰 게시판, 취미 게시판이 진짜 알짜였지. 이땐 지나가는 뻘글 하나 조차도 무게감이 남달랐달까?

지금은 외주 제작이나 창작 활동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 같은데 온라인만 두고 본다면 실상 하루에 글이 한 두 개 올라올까 말까한 폐허다. 뭐 레고의 인기가 한창 때만 못한데다가 그간 여기 말고도 다른 유명 커뮤니티들이나 유튜브같은 매체들이 성장한 영향이 본디 가장 큰 이유겠지만, 비교적 초창기 시절부터 흥망성쇠를 지켜봐온 일개 회원으로서 나름대로 그레샴의 법칙을 확인한 셈이다. 

ps) ‘그 분’과는 2년 전엔가 마지막으로 쪽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아들내미가 본과 올라간다더라. 내가 자게에 가입 인사 겸 입시 관련 내용을 넌지시 썼을 때, 거 의사 좋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의대에 목을 메냐고 댓글로 친절히 일침을 놓아주신게 떠오른다.

ㅎ...(x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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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자료를 찾다가 Jens Nygaard Knudsen 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레고 미니피겨의 창시자이자 클래식 우주시리즈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전설적인 인물이단다. 난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2년 전, 향년 78세로 작고한 소식 또한 인터넷 뉴스로 찾아 볼 수 있다. 브릭셋을 보면 이 분이 생전에 디자인한 기성제품들의 일부가 리스트업 돼있다. 개중에서 가장 구미가 당기는 대목은 1980년대 Universal Building Set.

 

고인이 즐겨 쓰던 건축 기법의 정수와 더불어 과장 조금 보태 레고의 철학까지 녹아있는 그런 시리즈란 생각이 든다. 김선생 대충 청진기 대보니 짜임새와 손맛이 안봐도 유튜브인게, 동시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레고랜드 시리즈와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것이 없어보인다. 흙 속의 진주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노질이 정점을 찍고 있는 건지 저 리스트를 유심히 보다보니 이 UBS 제품 중 하나를 벌크로 복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기성 셋트를 사모으는 게 좀 지겹기도 하고, 무엇보다 UBS 시리즈는 톤이 너무 나이브해서 있는 그대로 만들기엔 느낌이 뭔가 아쉬웠다. 과거 1589 때처럼 컬러만 클래식 우주시리즈 스타일로 바꿔서 복원해본다면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만든 사람이 같으므로 이건 무조건 어울릴 수 밖에 없는 필승조다. 일단 브릭링크에 오더 넣었다.

 

20070214



이 복원이 끝나면 기성품 몇 개 더 모으고 콜렉션은 당분간 접을 계획이다. 레고랜드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빈티지들이라고해서 다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들이나 별로 감흥없는 것들을 리스트에서 다 지워버리고 나니 이젠 별로 모을만한 게 없어졌다 (...)

60년대 타운플랜이 최종 종착점이 될텐데 뭐 이건 돈만 있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니 그냥 마음 비우면서 천천히 가는 게 맞다.

1) 6285 바라쿠다 해적선 (괜히 팔았...), 2) 6086 비룡성, 3) , 4)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