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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race

점방아재 2021. 12. 24. 13:52

 




367 Space module with astronauts.

미국 본토 버젼인 565 Moon Landing 과 같은 모델이다. 역시 항례의 경우처럼 LEGO USA의 제목이 훨씬 감상적이다.

전형적인 70년대 빈티지 제품답게 뭔가 조립한다는 느낌보다도 쌓아간다는 느낌에 가깝다.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브릭만을 써서 사물을 단순화한 만듦새는 과연 도트 장인스러운 맛을 자아낸다. 이쯤되니 노란색 사다리나 월면차의 바퀴 정도가 대단한 특수 브릭으로 느껴질 정도다. 단점은 당시 플라스틱 사출 마감이 요즘 것과 달리 샤프하고 단단해서 조립시 손가락이 적잖게 고통 받는다는 것.

 

Rover 라 불리는 월면주행차가 등장하는 걸로 봐선 1971년의 아폴로 15호 탐사 미션을 그려낸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월면차는 아폴로 16, 17호에서도 쓰였지만 최초로 투입된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아무래도 아폴로 15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내 추측이 맞다면 저 3인의 astronauts 는 데이빗 스캇, 알프레드 워든, 제임스 어윈이 되겠다.

아폴로 미션하면 역사적으로 오메가의 문워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아폴로 15호 때에는 월면 탐사 직전, 운모 글라스가 파손되어 선장 스캇이 백업용으로 가져온 부로바의 루나 파일럿이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시계는 NASA가 우선 사용을 승인한 적 없는 갑툭튀였대나 뭐래나.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부로바와 스캇 사이에 모종의 스페셜이 있었을 거란게 학계의 정설인데, 뭐 우표 스캔들도 그렇고 이런저런 사익 관련 이슈들이 따라다닌 것을 보면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막 웅장하고 네모반듯한 위인들은 아니었나보다.

 

우주인은 피겨의 머리만 바꿔 끼워서 MAXIfigure 스타일로 전환이 가능하지만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봤을때 은은한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본래의 헬멧 형태가 훨씬 진중하고 보기 좋다. 바이져 너머로 왠지 데이브 보우먼의 표정 같은 것도 오버랩 된달까. 2x2 투명 브릭을 가지고 단 한 획으로 우주용 헬멧을 묘사한 기발함은 오래도록 회자될 디자인이란 생각이 든다. 실은 월면차가 어찌고 1975년산 레고가 저찌고 하는 것 보다는, 이 영화가 한 술 더 떠 1968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정규 우주시리즈 이전 시대에 우주를 소재로 한 레고는 이 367 과 그보다 앞선 1973년의 358 Rocket Base, 2가지가 존재한다. 367이 대놓고 아폴로 달착륙선을 묘사했다면 358 은 대놓고 새턴V형 로켓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에 대해선 아무래도 역사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다.

실제 6,70년대 무렵은 냉전시대 미-소 두 강대국의 우주경쟁이 한창이던 시기다. 이미 유인 달착륙을 넘어 태양계 행성으로 시야를 넓혀가는 가운데, 우주개발이 더 진행되면 앞으로 인류의 삶은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막연한 호기심과 상상력이 유행하던 시기기도 하다. 그러한 사회적 시류와 맞물려 레고 또한 우주를 소재로 한 테마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고, 개중에서도 대중들에게 친숙하면서 상징적 의미가 큰 아폴로 계획의 서사(1961-1972)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해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358 은 학부 시절 때 사놓고선 지금까지 10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데(...) 조만간 꺼내볼 참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1978년에 레고 시스템은 미니피겨 스케일의 LEGOLAND 레이블 시대 (노란박스 시절 2세대) 로 들어선다. 이것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구조는 서로 다른 이야깃거리를 가진 세계관의 구성이다. 우리네 실생활을 배경으로 한 마을 시리즈,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 시리즈, 마지막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우주 시리즈, 이렇게 3가지 테마를 원년 멤바로 전면에 내세운다.

이제 우주시리즈가 정식으로 등장함에 따라 선대의 358과 367 을 계승한 다채로운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레고사의 오피셜 네이밍은 아니지만 이 시기부터 1987년 퓨트론 시리즈 이전 까지의 제품군을 통칭 Classic space era 로 부른다.




클래식 우주시리즈 시대의 제품들은 복고풍적 기계 묘사와 선바이져가 없는 피겨 헬멧, Blue/Gray/Tr. Yellow 컬러 조합 등을 고유의 특징으로 갖고 있다. 빨간색 우주선이 행성을 빙 둘러가는 골드 플래닛 마크는 이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콘이다. 이 마크는 우주인 피겨 토르소에도 프린팅 되곤 했는데, 역시 당시의 부족한 기술력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면 쉬이 지워지기 일쑤여서 사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은 저 마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제품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잠깐 이쯤에서 왕년의 라떼, 베니옹을 모셔보자.

클래식 우주시리즈의 디자인 콘셉트는 보기에 따라서 매우 투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심의 원초적 상상력에 가장 충실한 시대가 바로 이 때라고 본다. 특히나 베니의 우주선의 오마쥬가 된 갤럭시 익스플로러 같은 것들은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은 불멸의 마스터피스다. MISB 까지 바라지도 않고 NIB 만 돼도 충분히 좋은데 과연... 매물이 나오긴할까? 있다 하면 최소 3~4천불 이상 잡아야 할 것 같다.





레고 우주시리즈는 이후 퓨트론/블랙트론, 스페이스 폴리스, M트론 등 일련의 스토리와 대립구도가 담긴 시리즈물로 이어지며 성공적인 전성시대를 구가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디자인이 더 세련되어지고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정서와 기조는 대체로 유지했다. 그러다가 아이스플래닛, 유니트론 등의 System 레이블 시기를 거쳐 스타워즈가 등장하며 헐리우드 영화를 표방하는 쪽으로 체질이 변해가면서 사실상 이런 느낌의 우주시리즈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소위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혈통은 사실상 M트론까지다.

 

스타워즈... 난 아무리 좋게 봐줄라해도 도저히 취향이 아니다.


200527 w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