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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8 studs

레고랜드 전성시대

소위 '랜드 시절' 레고로도 많이 통용되는 명사인 legoland 는 레고질을 하다가 단종된 과거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반드시 접해보게 되는 단어입니다. 뭐 어느 취미 분야든지 빈티지 영역 (a.k.a 돈먹는하마) 이 따로 있는 것이고, 레고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완구인만큼 예외는 아닌데요, 보통 이 바닥에서 말하는 빈티지란 최소 레고랜드 시절 혹은 이보다 더 오래된 연식의 제품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레고랜드는 본래 테마파크의 이름이었습니다. 1968년 덴마크 빌룬트에 레고랜드가 들어선 이후, 레고사는 홍보를 겸하여 제품 판촉 목적으로 1971년부터 기차시리즈와 베이직시리즈를 제외한 종전의 system 계열 제품들에 테마파크와 동일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레고랜드 레이블의 기원입니다. 마치 삼성 휴대폰은 갤럭시, 애플 휴대폰은 아이폰인 것 처럼 일종의 브랜드 라인 같은 것이었지요. 레고랜드 시리즈는 1971년부터 1990년대 초반 (대략 1992년 전후) 단종에 이르기까지 약 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레고史를 관통하는 불후의 명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레고랜드 레이블은 후술할 피겨스케일의 여하에 따라 크게 1세대, 2세대로 나뉩니다.  1세대는 1971년 ~ 1979년, 2세대는 1978년 ~ 1990년에 발매된 제품군에 해당하며 각자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1세대는 전통적인 직사각형 형태의 브릭을 이용해 가옥, 카페, 풍차, 경찰서 같은 생활 풍경 등을 표현한 제품군입니다. 미술로 빗대자면 기초 뎃생에 비유할만한데요, 세밀함보다는 굵직한 윤곽선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때 축적된 기본기와 데이터베이스가 장차 2세대 시절의 중요한 원형이 되죠. 모델 넘버링은 세자리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스엔 공통적으로 5색 마킹과 흰색 바탕 검정글씨의 Legoland 가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저 5색 막대 마킹은 당대 빈티지 레고의 상징과도 같은 표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75년에는 미니피겨가 첫 선을 보입니다. 오늘날에는 낱개 포장된 피겨만 따로 판매가 되는 등 미니피겨란 것이 일면 매우 당연하고 흔한 소모품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이 자그마한 피규어의 탄생은 전체적인 판갈이의 시발점이 된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미니피겨 역시 처음부터 오늘날의 모습은 아니었고,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세분화됩니다. 1975년 ~ 1977년에 나온 초기형은 stiff figure 라고 해서 팔다리가 없고 브릭을 조립해서 만드는 타입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그려져 있지 않아 흡사 달걀귀신 같은 모습이었죠. 

 

1978년에서야 비로소 현재 모습의 regular figure 가 탄생합니다. 레고의 변천사를 두고 봤을 때 1980년대 본격적인 피겨 스케일로 이행되기 직전의 바로 요 3 ~ 4년간이 참 재미있는 시기입니다. 본 블로그에서도 이미 여러차례 소개 드린 바, 이 당시 레고들에는 여러가지 과도기적 진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거든요. 그리고 이 regular figure 의 등장과 함께 바야흐로 본격적인 레고랜드 2세대가 막을 올리게 됩니다.

 

 

1977년형 #372 Texas Rangers 中 초기형 stiff 미니피겨, 사람발은 말발, 말발은 사람발

 

 

 

 

 

레고랜드 2세대부터는 모든 제품이 regular figure 스케일에 맞춰 제작되었습니다. 아울러 예전에 없던 새로운 파츠들이 다양하게 개발됨에 따라 기능미와 디테일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한마디로 포텐이 제대로 터지기 시작한 겁니다. 넘버링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 양적으로 점점 풍부해지는 제품들을 커버하기 위해 1978년 과도기에 나온 일부 소수 모델들을 제외하곤 네자리수 제품번호가 매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박스 디자인도 새롭게 변경돼서 이때부터 노란바탕 하늘색 글씨 legoland 로 통일됩니다. 이것이 이 시절 올드레고의 시그니쳐인 마성의 '노란박스' 입니다.

 

oldies but goodies...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테마' 입니다. 레고 제품들이 전례없던 마을 시리즈/성 시리즈/우주 시리즈 로 세분화 되면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주제 의식을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1980년대 말미엔 해적 시리즈가 새롭게 추가되며 레고랜드 최전성시절의 판타스틱 4를 구축합니다. 

 

 

 

 

7, 80년대 레고의 황금기를 이끈 일등공신이었던 레고랜드 시리즈는 90년대 초에 단종 수순을 밟게 되고, 이후 레고사는 과거의 system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뀐 건 이름만이 아니었는데, 9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부터 통짜 부품의 남발과 성의 없는 디자인으로 전반적인 퀄리티가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의 명성을 일부러 망치려는 듯한 뿌락치적 행보를 자행했죠.

 

일종의 집합 개념이자 그간 레고 블럭의 정체성을 상징하던 system 레이블은 말년에 이런 저런 부침을 겪다가 1999년을 마지막으로 초라히 퇴장하였습니다. 뒤이어 스타워즈, 해리포터, 스튜디오, 잭스톤, 마블 코믹스 등과 같이 만화나 헐리우드 영화류를 추종하는 테마들이 레고의 주류로 자리를 잡게되죠. 그러나 이들은 이미 과거의 맛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으며 이제 레고는 본격적인 암흑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지금은 워낙 압도적인 제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다보니 레고랜드 시절의 구형 모델들은 어지간한 복고 취향이 아니면 별로 관심도 받지 못하는 역사 속 저편의 유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레고는 블럭 완구의 본질적인 철학과 기본기에 대단히 충실한 제품들이라 꼭 올드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접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도 말고 1980년대에 출시된 기본 가옥 모델 하나만 구해서 만들어봐도 그 진가를 알 수 있는데요, 요즘 것 같이 화려하고 세밀한 맛은 기대할 수 없지만 별 부담없이 손으로 블럭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무언가를 맨들어간다는 지극히 원초적인 재미가 무엇인지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덤으로, 플라스틱 성형의 질감도 과거와 요즘 것은 완전히 달라서 손 끝에 걸리는 감각 클린슛이다 부터 다르죠.

 

하루 종일 조립해도 피곤하지 않고, 수수하게 만들어서 담백하게 즐길 수 있는 묘미. 그것이 바로 레고랜드 시절의 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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